영화에 대하여/영화를 보고

영화 매드씨티(MAD CITY 1997)를 보고

zeroseok 2016. 10. 22. 01:26


우리는 객관화된 사실을 ‘정상’적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그 객관화된 사실이 정말 ‘객관’적인 것일까. 
영화 'Mad City’는 이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영화이다.

분명한 것은 이 영화는 과장, 즉 극단적인 상황에 몰아 넣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것을 전제로 안고 가야하는 분명한 이유는 영화 속의 인물들이 행동하는 동기는 오로지 욕망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욕망으로 인한 딜레마가 각 인물들 스스로 뿐만 아니라 모두를 더 극단적인 상황에 몰아 넣는다. 
각기 다른 욕망들은 충돌할 수 밖에 없는 지점에서 충돌하며 끝내 이 영화는 사건을 이끌었던 
당사자의 자살로 인해 비극적으로 끝맺음을 맺는다.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 겸 시나리오 작법 워크숍 전문가인 데이비드 하워드가 쓴 책 ‘시나리오 가이드’에 따르면, 영화의 인물들은 어떤 일을 하려고 대단히 노력하는데 그것을 성취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 어떤 일은 성취하기가 ‘어렵다’일 뿐이지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 주인공의 대척점에는 적대자가 있는데 이 것은 주인공이 어떤 일을 성취해 내는 데에 어려움에 해당한다. 이렇듯이 이 영화는 헐리우드에서 횡행하고 있는 시나리오 작법에 따라 충실하게 짜여진 영화이다. 하지만 이것이 이 영화의 본질을 꿰뚫는 핵심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앞서 말한 행동의 동기를 전제로 안고 이 영화가 던지는 메세지를 
우리 사회에 비추어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캣맘 사건’으로 인해 들썩이게 하고 있다. 
캣맘 사건은 길고양이에게 집을 지어주던 사람이 옥상에서 떨어진 벽돌을 맞아 숨진 사건이다. 
이 사건의 용의자는 몇일이 지나고서야 초등학생인 것으로 밝혀졌다. 
용의자가 밝혀지기 전에 언론에서는 무수한 비객관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사실 캣맘 사건으로 불려야 하는 이유도 모른채 이 사회에 캣맘들은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 부터, 길고양이들의 개체수는 얼마나 되는가, 용의자는 분명히 캣맘을 증오하는 증오 범죄일 것이라는 추측성 기사까지도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용의자는 형사처벌도 받을 수 없는 초등학생으로 밝혀졌다. 
초등학생이 벽돌을 옥상에서 던진 이유는 중력낙하 실험 때문으로 밝혀졌고, 
무고한 시민의 죽음으로 인한 대중의 분노는 용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화살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도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사건의 핵심은 초등학생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 혹은 그의 가족들이라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은 사회적 합의에 대한 변경이 요구될 때 어떻게 다시 합의를 구축해 나갈 것인가가 핵심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객관'적이며 ‘정상'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 사건은 ‘Mad City’의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다. 
샘은 미필적 고의로 인해 자신의 동료를 죽이게 되었고 이것이 일파만파로 퍼지게 되었다. 
샘은 죽일 의도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단지 박물관장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듣게 위해서 총과 다이너마이트를 가져간 것 뿐이다. 
그리고 샘은 절대로 아이들을 해치지 않고 맥스는 샘의 선량한 면을 보고 도와주려고 한다. 
이 영화에서는 카메라를 통해서 언론의 제 기능을 충실히 하려고 노력한다. 
영화 속에서 많은 카메라보다 관객이 바라보는 카메라가 더 정확하고 객관적이다. 
카메라를 통해서 전체적인 사건을 시간 순서로 바라봄으로써 관객에게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의 언론들은 그렇지 않았다. 사건의 본질과는 전혀 관련없는 기사들을 취재하고 쏟아냈으며, 영화가 바라보는 카메라 만큼의 객관적인 사실을 영화 속의 언론들은 쏟아내지 않았다. 
그렇기에 샘에 관련된 추측성 기사들로 인해 대중들은 본질은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샘을 위한 티셔츠를 만든 다는 것, 그의 노래가 나오고, 심지어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리게 되는 상황까지도 영화에서는 연출된다.)

우리 사회에서나 'Mad City’의 사회에서나 언론이 객관적인 사실을 정상적으로 보지 못할 때
(정상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앞선 전제 때문이다.) 
대중들은 어떻게 변화고 핵심을 간파하지 못할 때 비극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분명히 일어나게 된다. 
얼마나 객관적이 되야 하는 것은 이 영화의 카메라의 시선으로 객관적이게 될 수 있는 것이고, 이 것을 정상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카메라를 통해 바라본 시선으로 본질적인 부분을 간파하는 것이다. 이 것이 언론이 행해야할 제 기능이고 영화는 본질적으로 이 물음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