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하여/영화를 보고

관부재판을 아시나요? - <허스토리(Herstory, 2018)>

zeroseok 2018. 8. 15. 16:00

'허스토리' 극장 밋업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pepsi81 님께서 예매권을 주신 덕분에 '허스토리'를 보았습니다.
우선 제 리뷰에 앞서서 너무 감사하단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스크립트로 참여하신 @juheepark 님 고생 많으셨어요. 마지막 엔딩크레딧에서 스크립트로 이름 올라간 것도 보고 나왔습니다.
영화 리뷰를 시작하기전에 앞서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모르신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글을 우선 전하려 합니다.
글의 제목처럼 영화는 관부재판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관부재판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사실 저도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관부재판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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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핵심 주제이기도한 관부재판이란

관부재판은 1992년 12월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 지부에 재소한 '위안부'피해자 3명과 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 총 10명이 원고가 되어 약 9년동안 걸쳐 진행된 재판입니다. 이 재판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후쿠야마 연락회'등이 결성되어 국내의 재판지원회와 긴밀한 한일시민단체의 교류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로 1998년 4월 일본 사법부는 사상 최초로 입법을 하지 않은 일본정부의 책임을 물어 피해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지불할 것을 판결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고등재판에서는 일본정부의 항소로 판결이 뒤집어졌습니다. 결국엔 사죄와 보상에 대한 입법 의무가 명백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일본 헌법과 구조가 과거 식민지와 전쟁 피해자 개인에 대한 사죄와 보상의 의무가 국가에게 부여되지 않는다고 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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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관부재판이 이루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고, 재판 과정을 문정숙이라는 인물을 통해 관객에게 전합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민규동 감독은 그런 전략을 택한 것 같습니다. 관객을 문정숙 캐릭터의 시선에 따라가게 합니다. 억지로 눈물을 짜내게 하거나 너무 노골적인 신파 장면도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빠르게 문정숙 캐릭터를 관객에게 입히기 위해 쇼트가 바쁘게 움직이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략과 비극의 재현을 배제한 연출이 이 영화를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다 보면 먹먹합니다. 문정숙 캐릭터의 성장을 관객이 함께 호흡했기 때문에 공분을 사는 장면이 없더라도 가능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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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동 감독은 이 영화를 감독 빼고 철저한 여성영화로 비춰지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느끼기에도 과거와의 접점을 이어주는 여성영화라는 점에 공감합니다. 과거(개인이 연대할 수 없었던)에 권력에 희생당한 여성들을, 다른 여성이 이것을 바로잡고자 애쓰며, 다음 세대로 이어져 연대하는 동시대적 영화인 것 같습니다. 영화의 여러장면에서 다양한 여성을 대표하는 모습들이 두드러져서 좋았습니다.
제일 인상깊었던 장면은 배정길(김해숙)할머니의 초청 강연 장면과 마지막 법정에서의 호소 장면입니다. 비극적인 역사 앞에 가려지고 초라해진 개인의 모습이 대비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하자면,

  • 문정숙 캐릭터는 실제로 단장이었던 김문숙 회장이 모티브였다고 합니다. 재판을 위해 자신의 돈 20억 정도를 쓰면서 다 탕진하고 현재는 가난하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 'Her Story' 라는 민규동 감독의 단편에서 제목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 제목은 70년대 여성주의자들이 찾아냈던 단어라고 합니다.
  • 한지민씨가 선생님 역할로 특별출연 하였습니다. 평소에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제작사 측에서 보낸 러브콜에 흔쾌히 응했다고 하네요.

마음이 먹먹해져 더 관심을 기울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꾸 멤돌았던 문정숙 인물의 대사가 있습니다. "세상은 안 바뀌어도 우리는 바뀌겠죠." 이 영화가 '우리'를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게하는 영화인 것 같고, 우리가 바뀌면 세상도 바뀔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