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하여/영화를 보고

해원이의 슬픈 일기 -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Nobody's Daughter Haewon) 2013 / 홍상수

zeroseok 2016. 2. 2. 15:14

해원의 엄마는 캐나다로 떠났다. 이제 비로소 해원이는 한국에 혼자인 것이다. 누구의 딸도 아니라는 것은 혼자 남겨진 해원이를 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이제 혼자 남은 해원. 누구의 딸이 아니라 특별한 해원. 그래서 외로운 해원. 해원의 짧은 일기 속에 관객은 잠시나마 해원의 힘듦을 체험한다. 이성준(이선균)은 해원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감독이자 학교 교수이다. 해원은 어머니가 떠난 후 너무 힘든 나머지 이성준에게 연락을 한다. 성준과 해원은 약 1년 째 서로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던 중 학교 학생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둘의 관계를 들키게 된다. 해원은 엎친데 덮친격으로 일이 복잡해지게 된다.







- 꿈을 통한 자기여행


해원은 꿈을 자주 꾼다. 처음에 엄마를 기다리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여배우를 만나 아기처럼 좋아하는 꿈을 꾸게 되고, 이선균과 안좋게 헤어지고 학교 도서관에서 영어책을 보다가 꿈을 꾸고 깬 뒤에 다시 또 꿈을 꾸게 된다. 이 꿈들은 현재의 상황을 잘 나타내기도 하고 해원의 생각들이 잘 드러난다. 즉 현실하고 연관이 되는 것이다.
꿈은 인간의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알려져 있다. 프로이트는 성이라는 이 한 단어로 모든 꿈들과 무의식의 세계를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해원의 꿈은 무의식이 드러남에 가깝다.
처음 꿈에서는 배우가 지망인 해원은 영혼을 팔아서라도 여배우의 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고, 학교에서 같은 학번 동기가 나오는 꿈은 자신과 성준의 관계에 대한 무의식(즉 성준과의 관계)이 상대에게 말하는 꿈이었다. 그리고 해원이 마지막에 꾸는 꿈은 해원이 자신조차도 몰랐던 모습들이다. 나는 이번 영화가 홍상수 영화가 생각하는 공간이라는 개념이 이번 영화에서는 다르게 쓰였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홍상수 감독의 영화 세계에서는 어떤 공간(시간의 차원을 넘어선 곳)에서 벌어진 일을 생각했다면 이번에는 해원이의 꿈을 통하여 해원이를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어쩌면 공간의 차원이 한 발자국 만큼 더 넓어 진 것이 아닐까.


-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해원

엄마는 해원을 자랑스러워 한다. 똑똑하고 건강하고 씩씩한 해원을 모습을 보면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해원은 엄마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어한다. 자신은 언제나 씩씩하고 당찬 모습을. 하지만 해원에게는 아픔이 숨겨져 있다. 엄마는 캐나다로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고, 성준하고의 불편한 관계를 정리하고 싶다. 엄마가 떠난 뒤 우울해진 해원은 성준에게 연락하고 성준하고 만나던 중에 우연히 학교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해원과 성준이 1년전에 왔었던 장소를 다시 오게되는데 그 곳에서 식당 아주머니의 실수로 해원과 성준의 관계가 밝혀지게 된다. 해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학생들과 성준은 해원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학생들은 대부분 해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뒷담화 아닌 뒷담화로 성준은 점점 더 난처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해원이 학생들이 이야기 하는 것들을 들었는지 확실하게 표현을 해주진 않는다. 해원은 잠시 얘기를 하는 동안 자리를 비운 상태(프레임 아웃)이고, 성준이 눈치껏 화제를 돌리려고 할 때 해원이 다시 자리(프레임 인)로 돌아온다. 나는 해원이 학생들이 하는 이야기를 다 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혼혈이라는 둥 돈이 많다는 둥 그런 헛소문을 다 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해원은 갑자기 들어와서 학생들에게 말한다. 그것도 아주 솔직하게. "내가 오늘 엄마가 캐나다로 떠났거든 그래서 우울해서 선생님한테 전화했어 거짓말해서 미안" 해원은 거짓말을 못한다. '이것이 팩트'라고 말하는 해원은 ‘팩트’를 말해 주지만 정작 해원은 그런 사실에 기댈 곳이 없다. 성준도 ‘팩트’ 안에서는 기댈 곳이 못된다. 학생들이 얘기한 것을 들어보면 다 어디서 들은 걸러지지 않은 헛소문이다. 우람이라는 학생에게 들은 애기도 정확하지 못하다. 해원의 두번째 꿈에서 우람이라는 학생이 잠깐 나오는데 아마도 해원이 학생들이 다 얘기한 것을 못들었다면 우람이라는 학생이 꿈에서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해원은 학생들이 했던 얘기를 듣고 더 힘들었을 것이다. 관객은 해원이 우는 장면은 딱 한 번 볼 수 있는데, 해원은 그 눈물을 보인 뒤로 더 슬프고 힘들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외롭고 슬프다가 무섭다고 했을까. 그리고 해원은 꿈에서 성준에게 말한다. '너무 힘들면 아무도 못참는다'고. 원하는 것을 다 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해원은 성준에게 벗어나 자신을 찾고 싶어 한다. 그 힘은 해원의 꿈이 알고 있다. 중간에 해원에게 용기를 내어 말하는 교수가 말하는 대목에서 알 수 있다. 해원은 다른 사람에게 이기적일지 몰라도 그 것이 자신을 찾는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힘은 누구보다 쌔고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안다. 꿈 속에서의 처절함이,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사실이, 현실이길 소망했던 꿈들이, 외롭고 슬프다가 이내 무서워진 현실이, 이 모든 우울이 공존하는 영화 속 ‘팩트’들이 우울함을 자아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난 뒤 우울해졌다.


- 해원과 성준의 슬픈 사랑 이야기
성준은 해원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해원은 엄마가 떠나면서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했다. 엄마처럼 하고 싶은거 다 하면서 살고 싶었다. 엄마도 같은 생각이었다. 해원이 자신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살기를 바랐다. 해원은 그러면 성준과의 관계를 정리해야만 했다. 성준은 유부남이었고, 아기도 있었다. 어쩌면 해원이 더 손해를 보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성준은 자신의 삶 하나도 포기 없이 다 지키려고 하는데, 해원은 점점 힘들어지기만 했던 것이다. 
해원은 항상 솔직했다. 그의 삶을 위해 혹은 어쩌면 자신을 위해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더이상 누구에게 희생당하지도 희생하기도 싫어진 것이다. 해원은 미국에서 온 교수와 잘 맞을지도 모른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미국교수는 해원이 필요했고, 해원은 자신의 희생없이 자신에게 충실하면서 살면 되기 때문이다. 꿈에서 깨어버린 해원은 얼마나 허무하고 슬펐을지 마치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꿈을 생생하게 꾸고난 뒤 깬 꿈처럼 허무하고 슬펐을 것이다. 해원은 비록 꿈 속에서 남한산성에서 만나는(전에 현실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던)등산객에게 술 한잔을 요구하고 등산객은 술을 따라 준다. 그리고 해원은 목마른 낙타처럼 시원하게 술을 들이킨다. 이 장면은 클로즈업이 되는데 꿈 속에서 해원이 위로를 받고 한을 풀어주는 영화 속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 생각한다. 성준과의 사랑은 스트레스처럼 꿈 속에 남아 있고, 결국엔 관계를 끝내지 못했다는 것을 해원도 알고(나레이션을 통해 말한다. 꿈 속에서 본 아저씨는 지난 번에 만난 아저씨 였다고, 즉 마지막 장면을 통해 꿈을 기억해내고 있다.)관객은 책상에 엎드려 있는 해원을 바라보고 이 영화는 끝난다. 엎드린 채 꿈을 복기하는 해원처럼 영화가 끝난 뒤에 관객도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꿈과 현실에서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찝찝함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해원이가 깬 현실에서는 성준과의 관계도 끝나지 않았고, 관객에게는 머릿 속에 내제된 해원이라는 인물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불편하다.


- 홍상수의 영화 세계

홍상수 기존의 영화하고 조금 다르다고 느꼈고, 어색하게 느껴져서인지 처음에는 '조금 다르네'라는 생각이 '재미가 없다’라는 생각 까지 갈뻔했던 영화였다. 하지만 해원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고 돌이켜 나를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역시 홍상수 영화구나 싶었다.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은 거듭할 수록 정확하고 날카로웠으며 깊다. 하지만 나의 내공과 깊이는 이 글을 쓴 만큼이라 생각한다. 처음에 해원을 보면서 슬픔과 힘듦을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공감하기가 힘들어서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해원이가 꿨던 꿈들을 생각했다. 꿈과 소망의 연결관계에 대해서 떠올렸다. 그렇게 하니 점점 선명해졌다. 해원의 행동들이 점점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해원이처럼 마음도 쓰라렸다. 마지막에는 나도 해원이 처럼 꿈에서 깨기가 싫었다. 자연스럽게 해원이를 따라 영화라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홍상수 영화들 중에서 가장 그리운 영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