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하여/영화를 보고

작은 희망을 넌지시 이야기하다. - 영화 <옥자>를 보고

zeroseok 2022. 10. 1. 02:07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옥자를 봤습니다. 지난 주에 개봉을 하고 바로 보려고 했지만, 조금 뒤에 봤네요. 영화 옥자는 개봉 전부터 이슈가 많았습니다. 칸 영화제에서 촉발된 이슈가 국내 대형 멀티플렉스의 개봉 문제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현재 국내에서는 멀티플렉스에서는 상영하지 않았고, 예술영화관, 독립영화관에서 상영을 하고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 뿐만 아니라 옥자 출연진이 무대인사를 다니면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옥자는 넷플릭스에서 제작, 배급을 하기 때문에 굳이 영화관에서 보지 않아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든 혹은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혔듯, 옥자를 보시려면 극장을 가시거나 최대한 큰 화면에서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래에 제가 글을 쓸 것은 스포일러가 많이 담길 것 같아서, 우선적으로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말하자면 봉준호는 여전히 봉준호다,라고 한마디로 축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대상은 바뀌었을지언정 그의 틀은 여전합니다. 봉준호 감독에게 실망을 했다는 사람부터 채식주의자가 되라는 말인가라는 말까지 옥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봉준호 감독이 단순히 미자가 옥자를 구하러 가는 이야기라거나 축산업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옥자는 어떤 이야기를 한 것인지 개인적인 시각과 분석으로 옥자를 해석해보려고 합니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옥자의 상징에 대하여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셨나요? 이 프로그램은 인간과 동물의 교감에 대해서 주로 다룹니다. 봉준호 감독은 많은 인터뷰에서 영화 옥자는 동물농장 프로그램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인간과 동물을 대등한 위치에서 바라봅니다. 옥자는 덩치는 크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돼지입니다. 거대 글로벌 기업인 미란도가 유전자 변형으로 만들어냈죠. 미자는 미란도에서 옥자를 입양 받아 약 10년동안 함께 생활을 하게 됩니다. 

영화 옥자에서 오프닝을 제외하고 첫 번째 시퀸스에서는 미자와 옥자의 교감을 다루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미자가 위기를 겪게 되는데,이 때 옥자가 기지를 발휘하여 미자를 구출하는 신도 담겨있습니다. 이 시퀸스에서는 옥자는 소통이 가능한 대상 혹은 존재로 비춰집니다. 그리고 기지를 발휘하는 장면에서도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교감할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미자에게 옥자는 그런 존재인 것입니다. 소통과 교감을 할 수 있는 존재. 그 다음 날(다음 시퀸스)에서 자본이라고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미자와 옥자가 살고 있는 산골짜기로 방문을 합니다. 

 위의 장면이 이 시퀸스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쇼트라고 생각하는데, 기본적으로 산골짜기를 방문한 미란도 사람들은 옥자를 소통 혹은 교감의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 쇼트를 꼼꼼히 해석을 하면,

옥자가 슈퍼 돼지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했기에 홍보를 위한 수단(혹은 자본을 더 불리기 위한)으로만 보는 카메라와 사람들 그리고 그 앞에 윤제문 씨와 변희봉 씨가 대화하고 있는 상황(아마도 여기서 순금으로 만든 돼지를 건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변희봉씨와 윤제문 모두 미자처럼 옥자를 소통과 교감의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자가 조니 박사에게 통역 없이 사인을 받고 있는 상황(미자는 조니 박사가 옥자를 자본으로 대하는 것을 모르고 있죠.) 까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결국 영화의 핵심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달을 하는 것인데, 봉준호 감독은 이 인물들을 한 쇼트에 모아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저에겐 마치 '내가 앞으로 이런 영화를 찍을거야, 잘 봐 소통하고 교감하는 대상을 사랑하는데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이들을 해치는 장애물은 무엇인지!' 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본에 맞선 옥자와 ALF

미자는 서울에 도착하게 됩니다. 아마도 미자는 서울은 처음 왔겠죠. 결국 미란도 한국지사에 도착하게된 미자는 거대한 유리벽을 마주하게 되죠. 이 때 옥자는 자기 몸을 던져서 유리벽을 부시게 됩니다. 하지만 너무나 무기력한 느낌입니다. 겨우 유리벽을 부셨다고 무너지지 않을 것을 잘 알죠. 어린 소녀가 몸으로 부딪히기에는 거대한 자본의 음모는 막을 수 없습니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동물해방전선(ALF)입니다. 미자와 같은 선상에 있는 그들은 서울에서 작전을 펼쳐 옥자를 구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자와 ALF 단원들이 만나는데 여기서 그들의 조직의 역사와 옥자를 이용한 작전의 동의를 구하는데 아주 작은 통역의 문제로 그들은 미자의 본심을 오해를 하게 됩니다.

ALF는 옥자를 이용하여 작전에 성공하는 듯 보이지만, 미란도의 착취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K는 미자와의 통역에서 자신이 거짓말을 했음을 밝힙니다. 하지만 단장인 J는 동의를 구하지 못한데서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조직의 전통을 깨버렸다는 점에서 그를 제명시킵니다. 봉준호 영화에서 완벽한 조직이나 개인이 나타나서 어떤 악에 대항하여 완전한 승리를 가졌던 적이 있던가요. 이번 영화 옥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딘가 부족해보이는 개인이 뭉쳐서 대항합니다. 하지만 항상 전면적인 승리는 가져오지는 못하죠. 더 절절하게 느껴지는건 미자가 옥자를 향해 느끼는 사랑 때문인지 몰라도 이런 실패들이 더 절절하게만 느껴집니다. 

처절한 돼지들의 울음이 소녀를 위로하다

슈퍼돼지 콘테스트가 열리고 미자는 드디어 뉴욕에서 옥자를 만나게 됩니다. 서울이라는 공간이 도심 사람들, 혹은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경험이자 체험이었다면, 뉴욕이라는 공간은 자본주의를 몸소 체험하게 되는 공간입니다. 시골 소녀가 서울로 상경해, 뉴욕에 도달하기까지 옥자를 만나는 순간은 미자에게 극적이었습니다. 그 떨리는 순간에 미자는 옥자에게 던저주던 감을 가방에서 꺼냅니다. 이 장면 표현이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캐릭터는 행동에서 성격이 잘 드러나는데, 한 장면으로 옥자의 대한 사랑, 절절한 사랑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죠.

그리고 미자와 옥자는 만나게 되고, 옥자는 충격적인 경험을 했던 탓인지, 사리분별을 하지 못합니다. 이 때 ALF의 반격이 시작되지만, 블랙초크가 등장하여 ALF의 조직적인 시위를 와해시켜버립니다. J는 이 때 간신히 미자를 구하고, K가 트럭을 이용해 그 둘을 블랙초크로부터 구출합니다. J에게 자신이 한 문신을 보여주는데 그 문신이 'Tranlations are sacred' 입니다. 통역은 신성하다는 것이죠. 저는 이후의 장면들은 이 문신처럼 통역이 얼마나 신성한가에 대해 그리고 어쩌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시퀸스라고 생각합니다. 

미자는 옥자와 같은 돼지가 사육되고 있는 것도 목격하고, 기계적으로 상업화되는 광경을 그대로 목도합니다. 수많은 돼지들 사이에서 미자는 옥자를 찾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미자가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옥자를 애타게 부르짖으며 찾을 뿐이죠. 하지만 사랑의 힘은 위대하여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옥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총을 쏘는 사내까지 도달하기까지 스페인어를 하는 국적을 가진 노동자들이 미자에게 무어라고 말을 합니다. 미자는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총을 쏘는 사내에게 말을 건내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건냅니다. 그리고 또다른 미란도가 등장하자, 영어로 옥자를 산 채로 사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황금돼지를 굴려서 미란도에게 던지죠. 미란도는 금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에 고객 배송까지 철저하게 책임지라고까지 지시하며 옥자를 돌려 보내줍니다. 

미자는 이 도살장에서의 경험이 자본주의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운듯 합니다. 옥자와 교감할 줄 알았던 미자가 자본주의를 깨닫고 더이상 통역 없이 이런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운 것입니다. 총을 든 사내에게 안돼요, 혹은 영어로 말을 하기 보다는 사진을 보여준 것도, 자본으로 대표되는 미란도에게 황금 돼지를 굴리는 것도 통역이 얼마나 신성한가를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옥자를 향한 사랑으로 세상과 통역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미자가 즉 신성한 존재가 된 셈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한국어-언어에 대한 농담 뿐만 아니라, 통역이 필요로 되는 상황들이 곳곳에 너무 많습니다. 첫 시퀸스에서부터 시작되죠. 그리고 중간 중간에 그런 장면들은 많습니다. 설국열차에서도 비슷한 장면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씬 중간의 약간의 코미디 요소였을 뿐, 통역기를 통해서 해결을 합니다. 하지만 옥자에서는 마지막까지 지속적으로 왜 이런 장면들을 계속 다룰까 곰곰히 고민해봤습니다. 비약일 수 있지만,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으므로 한 번 K의 문신에 따라 해석해봤습니다. 공교롭게도 K의 문신은 클로즈업으로 잡더군요. 물론 K가 대사로 전달하거나 다른 말을 했으면 더 임팩트가 없었을지도 모르고, 단순히 그의 깨달음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행동으로만 쓰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감독은 봉준호 감독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저는 한 번도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지만, 미자의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의 엔딩은 좋습니다. 무조건 해피엔딩이 아니라 작은 희망을 이야기하죠. 여기 아직 작은 희망이 살아 숨쉬고 있다. 옥자는, 아니 봉준호는 또 한 번 이렇게 작은 희망을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 어쩌면 영화 옥자의 엔딩은 관객을 오히려 위로해주는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