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하여/영화를 보고

녹터널 애니멀스를 보고 - 복수는 천천히, 그리고 차갑게

zeroseok 2017. 4. 3. 02:51

녹터널 애니멀스(Nocturnal Animals)를 봤습니다.

이 영화는 톰 포드(Tom Ford)가 연출한 것으로 유명해졌죠.

톰 포드는 패션 디자이너입니다. 그런 그가 영화를 연출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전작인 싱글맨은 톰포드가 직접 각본도 쓰고 연출을 하였습니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소설 원작(오스틴 라이트-토니와 수잔)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주연 배우들로는 에이미 아담스와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했습니다.

에이미 아담스는 영화 Arrival(컨택트)로 여러 영화제에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아쉽게도 수상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제이크 질렌할은 상과 인연이 멀지만 꽤 굵직한 영화들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특히 영화 나이트 크롤러에서의 연기는 영화에 몰입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배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 신작인 옥자에도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합니다.

이 두 배우는 녹터널 애니멀스에서 직접적으로 맞닿으며 시너지를 내지는 않지만, 각자의 힘으로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냅니다.

녹터널 애니멀스를 보고 나름대로의 해석과 감상평을 남기고자 합니다.

아래부터는 스포가 많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복수는 천천히, 그리고 차갑게


수잔(에이미 애덤스)은 오래 전에 헤어졌던 전남편 에드워드(제이크 질렌할)가 보내온 책을 받게 됩니다.

수잔은 에드워드와 헤어지고 새로운 남편을 만나서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이 더 부유한 삶을 살고 있지만, 속으로는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에드워드가 직접 쓴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제목의 소설을 읽어나가며 주인공 토니(제이크 질렌할)가 겪는 끔찍한 이야기에 빠져들던 수잔은 책의 내용이 자신과 에드워드 사이에 있었던 일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겉으론 행복하게 보였던 수잔의 삶 역시 흔들리게 되죠.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는 영화들은 많았습니다. 어떤 주인공 혹은 캐릭터가 복수를 위해서는 어떤 도구를 이용하게 됩니다. 그 도구는 필연적으로 정치적입니다.

그 도구로 반드시 복수는 성취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복수에 실패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쓴 소설이라는 도구로 수잔에게 복수를 합니다. 복수는 천천히, 그리고 분노를 폭발하지 않으며, 차갑게 스며들게 합니다.

결론적으로 에드워드의 복수는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로 영화에는 나오진 않지만, 수잔은 더 불행해졌을 것입니다.

 

 

수잔은 왜 불행할 수 밖에 없었나


수잔의 불안한 정서는 영화의 초반부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이미 중년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작품을 통해, 불안을 드러냅니다.

파티에서 친구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행복할 자격이 있는지, 현재 남편을 사랑하는지 조차도 쉽게 답을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커리어 성공 덕도 있겠지만, 남편의 재력 또한 그녀의 삶이 물질적으로 풍족해지는데 일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겉은 충만하게 채워졌지만, 속은 텅빈 채로 살아온 것이죠. 그것이 삶을 흔들어 놓습니다.

수잔은 '부재' 때문에 불행이 드러나게 됩니다. 남편의 뉴욕 출장으로 인한 부재로 인해 그의 외도를 알게 되었고,

과거에 함께했었던 에드워드의 부재로 인해 진정한 행복을 채우지 못한채 살아왔습니다.

부재는 불안을 증폭시키고, 에드워드의 소설은 그 속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진정 나약한 사람은 수잔이 아니었을까


수잔은 엄마를 통해서 에드워드는 나약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수잔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랬던 그녀가 에드워드와 결국 함께 할 때, 그에게 나약하다는 말을 해버립니다. 영화에서는 실제로 수잔이 '너는 나약해'라는 말을 하진 않지만, 그런 말을 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소설 속의 토니를 에드워드로 바라본다면(실제로 몇몇의 씬에서는 토니를 에드워드로 볼 수 있는 씬들이 있었습니다.) 토니는 마누라와 딸을 강간한 범인들이 접근했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나약함을 드러냅니다. 정작 수잔은 나약하지 않은 것 같지만, 불안에 떠는 그녀를 보면 결코 나약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영화에서는 결국 토니는 자신의 마누라와 딸을 해친 범인에게 총격을 가하면서 복수를 성공하게 됩니다. 공범이 죽었을 때, 말렸어야 했다며 한탄하는 그였지만, 결국 나약함을 극복하고, 총격을 가해서 복수에 성공하게 되죠. (이 씬의 편집에서 수잔이 에드워드의 아이를 지우는 씬과 연결이 되어 있는데, 그 때 말리지 못했음을 한탄하는 대사와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다시 돌아가서 그에게 총격을 겨누는 것처럼 소설이 진행되면서 에드워드의 복수가 진행 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수잔은 부재로 인해 불행한 상태여서 더욱 나약해집니다. 오랜기간 동안 복수를 위해 갈고 닦은 도구로 수잔에게 겨누고, 그 도구와 나약함을 극복한 에드워드는 결국 복수에 성공하게 됩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더 창의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었던 에드워드는 수잔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반면 에드워드를 기다리는 수잔의 눈동자는 떨리면서 불안과 나약함을 이겨내지 못하면서 영화는 끝이납니다. 

음악과 영상미가 꽤 뛰어난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톰포드는 적어도 영화의 문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그의 앞으로의 영화들이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