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하여/영화로 쓰는 일기

만약에 멀티버스가 존재한다면 내 생각에는

zeroseok 2022. 10. 28. 01:55

지금 이 모든 것은 영화인 것이다. 각본 없는 삶, 아니 어쩌면 각본을 써내려가고 있는 삶. 그 마지막에는 소멸만이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것은 동시에 일어나지만, 단 한 번 뿐이다. 그러니 부지런히 살아야한다. 열망하고 욕망하며 감정에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느끼고 있던가.

요즘엔 시간이라는 것을 붙잡아두고 싶다. 아니면 영화처럼 단 1초라도 온전히 재생될 수 있는 이미지의 연속들이 내 기억에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감정을 지나고서 느끼기에는 부족하다. 순간을 붙잡아둘 수 없어서 탄식만 뱉을 뿐이다.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그 표현은 어떠면 좋을까. 요즘엔 그런 것들을 느낀다. 말보다 행동과 몸짓이 더 큰 표현이라는 것을. 어떤때보다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 보면 감독의 말처럼 미묘한 장면들이 여럿 나온다. 서래의 머래를 쓰다넘기는 손, 그리고 거친 손에 핸드크림을 발라주는 손과 손들. 그리고 립밥을 나눠바르는 것들. 이 영화는 사랑과 상실을 다루고 있지만, 결코 "사랑해"라는 말은 그 둘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이 맥이 빠진 단어를 내뱉듯 말한다. 

확실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탁월한 영화다. 아주 좋은 상상력이었다. 하지만, 내가 관객으로 극장에 묶여있던 것처럼 고개를 돌리고 싶어도 내 앞에는 무언가가 계속 펼쳐진다. 고개를 돌리고 싶다고 했더라도 극장을 나서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잠시 멈추고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좋은 영화를 만나서 정말 기뻤지만, 처한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이 세계는 영화에서의 상상처럼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마음만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