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하여/영화로 쓰는 일기

내가 부산국제영화제를 가는 이유

zeroseok 2022. 10. 8. 02:35

내일 드디어 부산국제영화제를 간다. 이번 영화제에서 보는 영화는 총 4편이고 1박 2일의 일정이다. 영화사에서 일을 잠깐 했었는데, 그때는 금요일에 내려갔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 파티들과 행사들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때의 경험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내가 부산국제영화제를 가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딱히 없는 것 같았는데, 내 인스타 계정을 보다가 남긴 짧막한 글을 발견했다. 내가 남긴 것을 읽으면서 '그때는 이런 생각들을 했구나'하며 그때의 그 마음들을 다시 느껴볼 수 있었다. 여기에도 남기면 좋을 것 같아서 짧막한 소회같은 글을 남겨본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녀오며

다섯번째 방문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언제나 그렇듯 많은 씨네필로 가득했다. 그런 기운들로 인해 올해에는 어떤 영화들이 나를 설레게 할지 두근거렸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내가 선택했던 영화들은 하나같이 지루하거나 재미가 없었다. 심지어 첫 외국어 영화를 찍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봐도, 거장인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연출 의도를 들어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좋은 영화들을 먼저 만날 수 있는 기쁨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변질되어 갔고, 그런 회의감이 나를 지배해서 ‘내년에는 오지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되었고 별 기대없이 박정범 감독의 <이 세상에 없는>을 보러 갔다.

박정범 감독은 서울독립영화제의 밤에서 잠깐 만났던 기억이 있는데, 아는 형의 초대 덕분에 운이 좋게도 박정범 감독과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다. 어색하게 차려진 술집에서의 만남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박정범 감독은 그때 말이 별로 없었다. 당시 <무산일기>를 인상깊게 봤던 터라, 영화의 엔딩씬이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는 말을 건네려고 했었다. 하지만 무겁고 어색했던 분위기 탓에 그 말을 전달하지 못했고, 아주 잠깐의 우연스러웠던 일로 남았다. 영화를 예매하며 그때의 아쉬웠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고, 한국영화를 한 편도 안보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어서 이 영화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엔딩을 보여줄지 잠깐 기대하기도 했지만, 꽤나 길게 느껴진 러닝 타임과 결말을 알 수 없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내년에는 오지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굳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다음에 보게 될 영화의 상영시간이 임박하고 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이미 자리를 뜨고 있었다. ‘나도 곧 일어나야겠다’하는 생각이 들 때 즈음에 영화는 결국 엔딩에 도달했다.

한 인물의 뒷모습을 둔 채로 그가 닿는 시선의 초점을 흐리게 해서, 마치 수채화처럼 처리된 인간 세계를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 마지막 씬이었는데, 순간 <무산일기>에서의 엔딩씬이 겹쳐서 떠올라 울컥하고야 말았다. 결국 하고싶었던 이야기를 돌고 돌아 이렇게 아름답게 맺는구나, 여전히 이 감독은 따뜻한 시선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구나 그리고 묵묵히 자기 몫이라 생각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구나하는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울컥이는 감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아, 극장을 나가다가 문 앞에 서서 아주 잠깐 엔딩 크레딧을 바라보며 여운을 느끼고 다음 영화를 보러 움직였다. 
그렇게 극장을 나서면서 영화제 내내 들었던 회의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오히려 콱하고 다시 발목이 잡힌듯한 느낌이 들었다. 항상 기대하지 않았던 우연들이 더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다. 그리고 이런 영화들이 나로 하여금 부산을 다시 오게 만든다. 아마도 내년이 되면 또 가게 될 것이다. 내년에도 또 다시 이런 영화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