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하여/영화를 보고

온전히 스스로의 것으로 색을 내는 꽃은 없다. - 스토커(Stoker) 2013 / 박찬욱

zeroseok 2016. 2. 10. 01:50



아버지와 어머니 중에 나는 누구를 더 닮았을까? 가끔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떤 순간에는 아버지를 더 닮은 것 같고, 어떤 면에서는 어머니의 모습을 많이 닮은 것 같다.하지만 이론이나 어떤 규칙에는 100%로 라는 것은 없는 법. 분명 아버지와 어머니 모습이 섞여서 지금의 내가 되지 않았을까. 내가 생각한 이런 문제와는 다르게 영화 스토커는 어떤 근본적인 것을 건드렸다. '혈육'이라는 것에 대하여.

18살 생일을 맞이한 인디아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삼촌이 찾아온다. 이 한 줄이 이 영화의 담겨있는 의미와 설명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다. 18살이 흔히 겪을 수 있는 경험을 아름다운 영상미와 음악으로 한 편의 아름답고도 여운이 남는 영화를 만들었다. 박찬욱 감독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포스터를 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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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살 생일에 겪는 정체성 혼란
인디아는 아버지와 사냥도 다니고 아버지를 사랑했다. 그를 존경하고 따랐으며 그래서 18살 생일에 찾아온 생일은 인디아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것만이 아니라, 생각치도 못했던 삼촌의 존재와 등장,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뒤에 어머니에 대한 실망스러운 모습은 인디아에게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생일 날은 이 영화에서나 인디아 자신에게도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인디아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운명이 앞에 놓여져 있다. 부모와 자식간이 아닌 자신의 '혈육'에 대한 고민들이 에기치 못한 사건들로 찾아온 것이다. 어쩌면 1년 중에 반드시 생일은 지나가듯이 인디아가 겪을 일도 자신은 몰랐던 삼촌의 존재 때문에 언젠가는 지나가야할 일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는 그 생일에 벌어진 것이다.


- 남들이 모르는 나, 내가 모르는 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자신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살면서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지는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타인에 의해 포장되어지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이러한 고민 조차도 해보지 않으려는 것이 인간이다. 인디아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삼촌을 의심한다. 의심이 깊어질수록 자신의 주변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더욱더 삼촌의 존재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런 의심을 했던 상황은 인디아 자신을 성찰해보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삼촌은 툭툭 건드려서 그걸 터트려 버릴려고 한다. 마치 인디아가 처음에 물집을 터트렸던 것처럼 삼촌은 인디아에게 바늘 같은 역할이었다. 이 것이 터지는 장면은 인디아 샤워장면에서 드러난다. 삼촌이 윕을 목졸라 죽이고 인디아는 삼촌과 함께 무덤덤하게 윕을 마당에 묻는다. 그리고 더러워진 옷과 몸을 씻기 위해 샤워를 하는데 인디아는 방금 전 상황을 떠올린다. 인디아가 샤워를 하면서 울었던 것은 자신도 몰랐던 어떤 모습에 대한 슬픔이고, 그 것이 자신에게 희열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위'를 하는 행동과 사람(혹은 살아있는 어떤 것)의 목숨이 끊어질 때 느끼는 쾌감이 같다는 것을 느낀다. 아버지가 있었더라면 못느꼈을 경험이고, 삼촌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깨달을 수 없었을 것이다.


- 스스로 색을 내는 꽃은 없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교접을 통해 뿌리를 이어간다. 교접의 과정에서 반드시 섞인다. 하나의 색이 온전히 나오는 것이 아닌 두개의 색 혹은 그 이상이 섞여서 나온다. 그 색은 태어남과 동시에 스스로 발할 수 없다. 스스로 발할 수 없듯 그 색을 찾는 것은 그 존재의 몫이다. 인디아가 태어나기 전, 스토커 가의 세 명의 자식이 생겼고, 그 중에서 한 명의 자식을 잃었으며, 또 한 명은 자식이라고 볼 수 없는 그런 돌연변이 같은 존재었다. 나머지 한 명의 자식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였고 둘만의 자식을 낳게 되었다. 스스로 꽃을 내는 색은 없듯이 마치 꽃 위에 뿌려진 피처럼 자신의 색은 왜 이런 색인지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인디아처럼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그 과정을 충분하리만큼 겪는다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쾌감과 희열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처음에 영화를 보고나서는 18살 인디아가 겪은 성장통이었단 말이 참 와닿았고 단 한줄로 영화자체를 설명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글을 쓰면서 어쩌면 영화의 메세지나 의미로 보았을 때는 존재에 대한 물음을 혈육이라는 것으로 푼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 것은 감독의 의도가 아닐 수도 있고, 내가 발견한 것일 수도 있다.
세상에는 틀린 것은 없고 무엇이든 다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