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하여

[손남원의 연예산책]'할리우드, 어린이 살해 자제의 금기 깨지나' 기사 비판글

zeroseok 2016. 1. 27. 02:29




기사의 취지나 이야기하는 부분은 충분히 알겠는데

글쎄... 마지막에 주제가 흐릿해지는걸 보면 헛 웃음만 나온다.

초점을 제대로 맞지 않았으니 주제가 흐려진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기사를 다 읽고 나서 이 기사에 대한 비판을 적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를 쓴 기자가 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http://osen.mt.co.kr/article/G1110340535

(원문의 기사 링크입니다.)








기자가 결국 기사로 이야기하는 것은 요즘에 극장에 걸리는 영화든 IPTV로 볼 수 있는 어떤 드라마 그것이

해외의 드라마든 간에 잔인한 장면이 금기를 깨고 너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 어떤 드라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행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상업영화의 성지인 헐리우드까지 영향을 미쳐

헐리우드 마저 금기가 서서히 깨진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는 표현의 자유를 제제하면 마치 사회악은 사라질 수 있다는 전제를 깔은 문장으로

기사를 서둘러 마무리 짓는다.

마지막은 분명히 서둘러 마무리 짓는 느낌이 강하다. 

막상 펼처보니깐 '아 이건 내가 건드리면 부분이 안되는 것이구나' 싶은거라 생각 했을 것이다.

근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기사의 방향 자체는 좋았으나(이 의미는 기사의 내용이 깊이 있거나

읽어볼만한 기사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각해볼만한 주제를 던졌다는게 맞을 것이다.)

기사 초반에 나온 영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이하 시카리오) 에 대한 이야기다.



.

시카리오는 평단에서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훌륭한 평을 받았다. 

맥시코의 카르텔 조직의 무서움은 여러 기사들을 통해서 알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청소년관람불가이기도 했고 굉장히 잔인한 장면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충분히 카르텔 조직의 잔인함을 다룰 수 있었다.

잔인함을 다룰 수 있었다는 것만 가정한다면 어쩌면 HBO의 왕좌의 게임보다 더 잔인한 많은 장면들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만약 드니 블뇌브 감독이 그렇게 연출했었더라면

평단에서 좋은 평을 받지 못했을 것이며(드니 블뇌브는 스릴러 장르를 재해석 했다,)

주목받지 못한 채, 그저 잔인하며 기사에서 봤을법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다시 보여준 것 밖에 안됐을 것이다.(아카데미 촬영상 노미네이트가 된 것은 이유가 있다.)

시카리오는 맥시코의 국경 근처 도시 후아레즈를,

그리고 멕시코의 카르텔 조직의 뿌리깊은 악을(어쩌면 그들에게는 선일지도 모르는)

최고의 촬영감독이라 칭송받는 로저 디킨스의 촬영을

기자가 말한 '리얼한 허구'로 탈바꿈하여 부르기에는 너무 영화가 아깝다. 불편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인 것이고.

그래서 조목조목 짚어가면서 반론하고 싶다.






(아래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자는 '최근 세계적 관심을 모았던 사회고발이나 이라크, 아프칸 전쟁영화 수작들처럼 '시카리오'도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스크린에 옮긴다는 사실이다.'이라며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담아낸 것이 '문제'라고 했다. 이건 터무니 없어서 반론조차 하기 싫다. 도대체 왜 문제가 되는 것인지 명시하지 않았기에 이건 넘어간다.

그러나 다음 문장에서 '리얼한 허구는 무서운 현실보다 더 관객을 자극하고 떨게한다.라며 바로 전 문장이 날 것 그대로 담는 것이 문제라고 했는데 그것은 결국 리얼한 허구라고 지칭한다. 기자는 적어도 영화의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할 것이며, 2차 세계대전 전후 사실주의를 추구했던 이탈리아로부터 출발한 경향도 모를 것이다.

이건 모를 수 있다 치자. 내가 진정 태클을 걸고 싶은 것은 '리얼한 허구'다. 도대체 시카리오에서 보여준 폭력의 현장들이 '리얼한 허구'라면

멕시코의 카르텔 조직은 이것보다는 더 순한(?) 조직임을 역설하는 것일까? 기사의 취지를 보았을 때 이건 분명히 아닐 것이다.

실제는 이것보다 더 잔인한 사건이 많았다. 그러니까 '리얼한 허구'가 아니라 리얼한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전쟁의 참혹함이 느껴지게 되는 장면들은 영화의 첫 시퀸스인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잘 나타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리얼한 허구'인가? 그건 사실 그 자체다. 스필버그는 연출을 통해 참혹함을 전달하는 것이다.

시카리오에서는 카르텔 조직원들이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거나 목을 잘라서 매달아두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잔인성을 끌어올리는 대신 도로에 달린 시체를 묵묵한 시선으로 주인공의 심리와 겹쳐서 보여준다. 관객의 대부분은 주인공을 보며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데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이 되면서 정의마저 무너진 곳에서의 심리를 공감하게 된다.

사실의 세계를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할 것이냐는 영화의 역사동안 다뤄져 온 문제인데 이 부분을 단순히 날 것 그대로 옮긴다 혹은 리얼한 허구로 관객을 자극하고 떨게한다로

결론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카리오가 좋은 평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현실을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특한 촬영과 연출로 날 것 그대로를 담아내는 것을 증폭시켰기 때문이고, 관객들은 허구라고 느끼기 전에 폭력적인 장면들은 최대한 덜었음에도 불구하고 잔인한 도시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족 앞 살인은 물론이고 아버지(천하의 악당이긴 하지만)가 보는 앞에서 철없는 아들들마저 피를 뿌리며 죽어나간다. ', '가뜩이나 신문지상에 어처구니없고 통탄할 어린 자녀 학대의 패륜 부모들 뉴스가 나오는 시점에서 왠지 모를 불쾌감으로 가슴이 먹먹해질 수밖에 없다.'



첫 문장만 보면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죽인 사람은 극악무도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기자는 저 문장하나로 영화의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린다.

시나리오상에서 반론하자면 저 아버지와 가족들을 죽인 사람은 저 아버지가 그 사람의 아내와 딸을 죽였다. 복수의 끝 장면을 저렇게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실 그 지점까지 가는데는 주인공의 심리 변화와 주변인들과의 갈등이 더 부각되었고, 주인공은 오히려 이 일에 휩쓸려서 이용당하게 되었다는 것도 있지만

결론만 놓고 보면 그렇다. 죽어야할 놈이기 때문에 죽인 것이다. 특히나 앞에 더 상세한 줄거리에 관한 것을 더 다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기사의 취지는 '그래도 어린이를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죽이는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것일 텐데,

우선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베네치오 델 토로가 가족들 모두를 죽일 때 피가 튀기거나 하는 장면은 안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 굉장히 잔인하다고 느껴진다. 시각적인 폭력적인 장면이 없는데 어떻게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었을까. 이것은 드니 블뇌브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를 지향했던 지점과 일치한다. 잔인함은 눈에 보여서 잔인한 것이 아니고 상상에 의한 것이 더 잔인할 수 있다. 감독은 이것을 간파했다. 촬영 기법으로 심리를 증폭시키도 하며, 여러 스릴러 영화에서 다루었던 잔인한 장면들은 생략한 채 더 잔인하게 느껴지게끔 연출한 것이다. 단지 저 두 문장으로 이런 멋진 연출이 묻히는 것이 안타깝다.

제일 중요한 것은 그래서 델 토로가 복수에 성공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포인트는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선을 위한 악, 악을 위한 선'을 묵인할수 있느냐다. 결국 주인공은 델토로에게 총을 겨누지만 쏘지 못한다.

애초에 이런 한 장면만 보고 할리우드 금기가 깨진다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 내가 더 '통탄'스럽고 '어처구니'가 없으며 이 기사로 인해 영화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발하지 못하고 묻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기자에게 '불쾌감'이 든다.



'표현의 자유와 이로 인한 사회악의 창궐을 막자는 규제 운동, 도대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만큼 풀기 어려운 숙제임에 분명하다.'

기자는 방향을 잃은 것이 분명하다. 제목에는 분명히 '이 금기가 깨지는게 말야 우려가 되지만 왜 깨지면 안되는 것인지 말해줄게' 하며 우려의 자세를 취하지만 끝에가서는 '근데 이건 어려운거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만큼' 하며 관망하는 태도로 슬쩍 물러난다. 깊이도 없이 표현의 자유를 논하는 것 조차가 화가 났으며,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단순히 사회악의 창궐과 직결이 된 것처럼 표현하는 것도 화가 났다. 이런 기사가 다음에서 탑 기사로 뽑혔다는 것은 더욱 더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