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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업보가 윤리보다 중요하다

zeroseok 2016. 1. 14. 23:40

자신의 업보가 윤리보다 중요하다

업(까르마)과 윤회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인도인의 종교 및 생활 철학의 기본 사상이다. 대다수의 전통적 힌두 교인들은 이 업보 사상을 깊이 이해하고 인정하고 있다. 반복해서 다시 태어나고 죽는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나면 처음엔 낮은 신분에 처해 있던 사람들도 자신의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높은 신분, 다시 말해 가장 자부심이 강한 브라만 신분으로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불가촉천민은 자신의 낮은 신분에 대해 왜 불평할 수 없는가? 그 사람들은 잘 교육된 힌두 교리에 따라 자신들이 전생에서 악행을 일삼았을 게 틀림없다고 믿는다. 

전생의 업으로 인해 현세에서 벌을 받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 업보 사상이 인도에서는 보편적인 정의의 법칙이다.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의 비참한 처지는 업보에 따른 것이다.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도 그 업보에 따른 것이다. 업보의 윤리를 믿는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대해 불평할 이유가 없다. 부자들도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겨 구제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는 모두 그들 자신이 전생에서 했던 일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천국에 들어갈 것을 믿고 불교도들이 극락세계에 들어갈 것을 믿듯이 현대의 인도인들은 대부분 이 업을 믿는다. 당연히 비참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가능성이 있는 업보를 두려워한다. 이 업보에 따른 삶은 인간관계에서 맺어지는 윤리나 도덕의 문제를 넘어선다. 정부가 정하는 형법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윤리도덕이나 법보다도 업보를 담는 힌두 교리가 더 중요하다.

업보의 고리를 끊을 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그러나 바로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힌두교 교리상으로는 업보의 고리를 끊는 방법이 윤리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바가바드 기타에는 영웅적 전사인 ‘알준(Arjun)’과 크리슈나(Krishna)의 대사가 나온다. 알준은 자신의 삼촌과 사촌을 죽여야 하는 전쟁 앞에서 갈등한다. 그의 왕사인 크리슈나는 그 친척, 친지들을 공격하여 진멸시키도록 설득한다. 여기에 힌두의 윤리 근거가 있다.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와 그들과 사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 게다가 죽여야 하는 당위성의 문제가 겹친다. 알준은 왕자요 장수로서 태어났기 때문에 공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만 한다. 어떻게 개인적인 관계를 이유로 사촌들을 징벌하기를 주저하는가. 비겁하게 회피해서는 안 된다. 결국은 사촌들을 진멸시키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실천을 하는 것이 도덕성을 이유로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 단지, 또 다른 업보가 쌓이지 않는 절제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략 AD 1세기경에 기록된 바가바트 기타에 이러한 업의 고리를 끊는 방법이 두 가지가 보인다. 바로 카르마(Karma)와 박티(Bhakti)다. 카르마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업보에 따른 수행이고, 박티는 헌신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행위의 실천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결과는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즉, 성공이나 실패에 얽매이지 말고 냉철하게 그리고 욕망과 목적을 버리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크리슈나는 알준에게 “욕망에서 벗어난 이여, 오직 육체만으로 행동하는 그에겐 어떠한 죄도 쌓이지 않는다. 그는 오직 숭배만을 위해 행동하기에 그의 카르마는 모두 녹아 없어진다. 이제 당신은 업보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그 비결은 자신의 요가 수행을 행동에 적용시키고 일상생활에 전념하는 동안에도 행동의 동기에서 벗어나 모든 행위를 사심 없이 해나가는 것이다. 만약 필요하다면, 그리고 의무가 그것을 요구한다면, 생명을 죽이는 행위까지 서슴없이 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행위에는 어떤 증오나 원한 또는 흥분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피가 홍수처럼 흘러내린다 해도 당신의 영혼에는 아무 오점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1) 

이러한 가치 기준이 가져오는 결과는? 끔찍하게도 신앙의 이름으로 무자비한 일을 행할 수 있게 된다. 중세의 가톨릭이 신의 이름으로 또는 하나님을 위하여 수많은 사람을 처형한 반인륜적인 행위가 가능했던 것처럼 감정의 개입이 없이 순수 신앙의 실천으로 살인이 가능해지고, 그보다 덜한 비도덕적인 행위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이행이 쉬워진다. 적어도 이러한 흐름이 인도인의 윤리관 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인도의 해방 당시 힌두와 무슬림의 살육은 백만 단위를 헤아린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이 개인의 신념으로 작용하면 극단적인 행동으로 19세기 말 인도의 애국자 띨락은 ‘바가바뜨 기따’의 이 부분에서 큰 감동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땅히 행하여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행하는 행위에는 비윤리, 부도덕, 반인륜이라는 사고를 뛰어넘는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추종자들은 열혈당원이 되었다.

만일 인도인들이 바가바트 기타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영국 식민통치의 형법을 넘어서 행동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였다. 착취당하는 인도 민중을 보며 법과 윤리, 도덕의 문제를 운운하는 것은 기만에 속하였다. 마하트마 간디는 힌두 광신자에게 암살되었다. 그가 바로 푸나 브라만 암살단 일원이었다. 이 암살자의 형이 수년 전에 영자 일간지 힌두스탄 타임즈와 인터뷰를 하였다. 한국에서 김구 선생의 암살자는 끝까지 매국노로 간주되는데 비해서, 이 간디의 저격자는 종교적인 열성분자로 인정된다. 그의 형은 지금도 인도와 자신들의 신앙을 위해서 간디 저격은 옳았다고 믿고 있다. 지금까지도 많은 인도 젊은이들에게 ‘힌두교 애국주의자’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 원칙과 윤리의 갈등은 적법한 법적용도 무의미하게 만들곤 한다. 수년 전 오리사에서 한센병자들을 돌보는 호주의 기독교 선교사 스탠리와 그 두 아들이 차속에 갇혀 불에 타서 목숨을 잃은 사건이 일어났다. 원숭이 신 하누만을 숭배하는 바지랑 달의 소행이었다. 정부는 빗발치는 도의적 윤리적 비난과 국제적 압력 속에서 범인 8명을 구속했다. 지방법원에서는 주범 다라 싱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고등법원에서는 종신형으로 판결이 났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법적인 조치와는 상관없이 다라 싱은 그 지방의 영웅이 되었다. 신앙적인 투사로 인정된 것이다.

신앙의 실천을 위해서는 살인도 가능하고 정당하다. 이 바지랑 달 못지않은 힌두 열혈당원은 뭄바이를 중심으로 한 쉬브 세나다. 그들의 임무는 신성한 인도 땅에서 온갖 더러운 외국의 영향, 특히 이슬람교와 기독교를 제거하는 데 있다. 이들은 미스 월드 대회나 발렌타인데이와 같은 서구적인 흐름의 행사를 극력 반대한다. 기업들 특히 코카콜라나 맥도널드 같은 기업의 진출을 적극 저지한 바 있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힌두들이 무력으로 수많은 이슬람교도나 기독교도를 살상, 능욕하는 것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카르마는 최악의 반사회적 행위를 하는 근거를 제시해 주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신의 업보가 윤리보다 중요하다 (12억 인도를 만나다, 2013.12.13, 북치는마을)





천상 선녀 메나까의 딸인 샤꾼딸라는 숲 속에서 까느와 성자의 수양딸이 되어 살았다. 어느 날 우연히 사냥을 나온 왕 두시얀따와 사랑에 빠진다. 둘 사이에서 바라따라는 아들이 태어났다. 이 아들은 왕이 되어 처음으로 후계자를 아들이 아닌 자격을 갖춘 자로 하기로 선언했으며, 그의 이름을 빌어 '위대한 바라따의 후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바라따 왕조에 샨따누라는 왕은 갠지스강의 여신을 만나 결혼한다. 왕비는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만 데리고 왕을 떠난다. 가장 훌륭한 스승 아래 왕이 될 준비를 마친 아이는 성장하여 아버지 곁으로 돌아와서 황태자가 된다. 하지만 왕이 사띠야와띠라는 처녀와 결혼하려고 하는 것을 알고 결혼 성사를 위하여 황태자 자리를 포기한다. 아들은 아버지를 위하여 왕좌에 앉지 않을 것이며 후손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 결혼도 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한다. 이후 아들은 무섭게도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는 뜻에서 '비슈마'라고 불린다.

왕은 결혼할 수 있었고, 왕비가 낳은 아들이 황태자가 되었는데, 두 처녀와 결혼하고 나서 왕이 되었으나 젊은 나이에 병사하고 만다. 하지만 비슈마는 스스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끝까지 왕좌에 앉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왕비는 처녀 시절 신비한 경험을 통해 난데없이 아이를 낳았던 과거가 있어 그 아들 비야사를 불러 두 미망인 왕비를 통해 아들을 얻는다. 미망인들은 비야사 성자가 두려워 눈을 감거나 얼굴이 노랗게 질린 채로 성자를 맞았기 때문에 각각 장님인 아들 드리따 라슈뜨라, 얼굴이 창백한 빤두를 낳았다. 미래를 걱정하여 비야사에게 청하여 하녀에게서도 한 명의 아이를 얻는데, 그는 하녀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가장 현명한 왕국의 조언자가 될 비두라였다.

드리따 라슈뜨라는 장님으로 태어나 맏아들임에도 정사를 제대로 보살필 수 없다 하여 왕위를 동생 빤두에게 넘긴다. 빤두는 한때 영토를 확장하는 등 맹위를 떨치지만 휴양차 갔던 숲에서 선인 부부를 실수로 죽이는 바람에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저주를 받는다. 빤두는 첫째 부인 꾼띠가 처녀 때 은총으로 받은 주문을 통해서 다르마의 신, 바람의 신, 천둥 번개의 신, 아슈윈 쌍둥이 신에게서 다섯 명의 아들을 얻지만, 저주에 따라 죽고 만다. 한편 드리따 라슈뜨라는 왕비 간다리에게서 아들 백 명과 딸 한 명을 얻는다.

빤두의 죽음으로 왕위에 오른 드리따 라슈뜨라는 자신의 장애로 인해 가질 수 없었던 왕위에 집착하게 된다. 이제 다음 대의 왕위는 누가 이을 것인가에 대해 조정에서는 빤두가 선대왕이므로 당연히 그 첫아들 유디슈티라가 왕위를 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드리따 라슈뜨라는 왕위에 대한 집착 때문에 갈등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맏아들인 두르요다나의 야망에 희망을 준다.

유디슈티라를 비롯한 빤두의 아들 다섯 명과 두르요다나를 비롯한 드리따 라슈뜨라의 아들 백 명은 사촌간이면서 왕위 계승 문제로 갈등의 가장 큰 소용돌이 속에 빠져든다. 두르요다나 측은 유디슈티라 형제들을 시기하면서 수없이 계략을 짜 죽이려고 하지만 다섯 형제들은 그때마다 살아난다. 불안해진 드리따 라슈뜨라는 아예 왕국의 절반을 떼어 유디슈티라 형제에게 주고 따로 통치하게 한다. 시기심이 많은 두르요다나는 왕국의 절반을 통치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외삼촌 샤꾸니와 계략을 꾸며 다섯 왕자에게서 왕국을 빼앗았을 뿐 아니라, 14년간 유배 생활을 하게 만든다. 마지막 1년은 행방을 아무도 모르게 지내야 했으므로 더욱더 어렵게 유배 생활을 마친 다섯 왕자들은 마침내 돌아와 자신들의 몫을 달라고 요구하고, 이에 응할 수 없는 두르요다나 측은 전쟁에 돌입한다.

다섯 왕자의 셋째 아르주나는 막상 싸움터에 서고 보니, 건너편 들판에 나와 선 사촌, 스승, 친척, 그리고 자기 의무에 충실할 뿐인 사람들을 보고 싸움에 대해 회의하고 살생을 두려워한다. 정당한 의무와 귀한 생명을 해치는 일 사이에서 번뇌하는 아르주나에게 끄리슈나는 우주적 질서, 개개인의 의무, 윤회의 법칙, 해탈에 이르는 길에 대한 가르침을 준다. 의무에 충실하라는 신의 가르침을 오랜 망설임 끝에 받아들인 아르주나는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서 승리한다. 우주적 질서 안에서 자신의 의무에 충실한 유디슈티라 등 다섯 왕자는 후에 히말라야산을 통해 천상에 도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하바라따』의 줄거리 (인도의 경전들-베다 본집에서 마누 법전까지, 2007.11.5, ㈜살림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