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하여

FINALCUT 탄생기

zeroseok 2016. 1. 2. 02:54
영화감독 프랑소와 트뤼포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는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영화에 관한 평을 쓰는 것이고, 세 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이상은 없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영화를 참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한데 모아보면 특징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 영화들을 토대로 적어도 트뤼포가 말한 첫 번째 단계는 잘 수행했다. 방과 후에는 집에서 할 게 없으면 비디오를 켜서 좋아하는 영화들을 계속 반복해서 봤다. 이미 봤던 영화를  다시 처음부터 보는건 지루해 했었다. 그래서 나는 비디오 여러개를 두고 빨리감기와 되감기를 눌러가면서 보고싶은 장면을 돌려서 봤다. 내가 계속 보고 싶은 장면들은 많았다. 지금도 내 머릿 속에 이미지로 각인 되어 있는 장면들. 이를테면  영화 ’딥임팩트’  후반부에 아빠와 딸이 떨어지는 혜성을 바라보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때, 영화 ‘콘택트’에서 엘리 에로웨이(조디포스터 분)가 은하계에서 온 신호를 받고 은하계로 웜홀을 타고 떠날 때(시인이 왔어야 했다는 엘리의 대사는 아직도 먹먹하게 느껴진다.), 영화 ‘아마겟돈’에서 해리(브루스 윌리스 분)가 자신의 딸과 결혼하는 AJ(벤 에플릭 분)를 대신하여 소행성에 깊히 박힌 핵무기 장치의 버튼을 누를 때(해리는 AJ에게  ‘너를 친자식처럼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래’라고 말한다.), 같은 장면을 다시 볼때마다 매번 이입된 감정이 전해져 적적한 눈물을 흘리곤 했다. 앞서 말한 세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우주를 배경으로한 SF영화라는 것이다. 우주의 미스테리에 목말라 있는 나의 갈증을 영화라는 시원한 음료가 해소해 주었다. 영화는 내가 직접 겪어 볼 수 없었던 우주 체험을 영상이라는 마법으로 여행할 수 있게 해주었고, 내가 체험한 경이로운 우주여행은 영화를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영화라는 매력에 점점 빠져 들어갔다. 트뤼포가 말한 두 번째 단계는 나에게 어렵게만 느껴졌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에 관한 평은 보다 전문적이고 쇼트(촬영의 기본 단위로서 한 번에 촬영한 장면)를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었는데, 감상평 비스무리한 것은 가끔씩 썼으나 그 것은 그저 영화를 감상한 후 남긴 글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영화를 만든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아니 내 머릿 속에는 '영화를 만든다’라는 문장 자체가 없었다. 나의 생각과 내가 같이 보고싶은 것들을 내가 아닌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감히’ 내가 해도 되는 것일까. 할 수 있기는 할까. 이런 고민과 회의들이 영화를 만든다는 작업을 저항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2013년은 나에게 특별한 한 해였다. 비로소 ‘감히’ 내가 ‘영화를 만든다’라는 문장이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라는 작업은 절대로 혼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영화를 다 보고나면 항상 마지막에는 엔딩크레딧이 화면에 올라온다. 거기에 보면 여러 사람들의 이름들이 올라오는데, 이 것만 보더라도 영화라는 것은 절대로 혼자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 동아리를 처음 만들 때에도 나를 포함한 총 4명의 친구가 함께 해주었다. 책의 첫 페이지처럼 탄생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2012년도에 복학을 하면서 만나게 된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둘다 2학기 때 복학한 복학생이었으며, 그 친구도 나처럼 영화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2학기 때 복학생은 우리 둘 밖에 없었고 물과 기름처럼 갓 들어온 신입생들과는 섞일 수 없었기에(지금 생각해보면 슬픈 복학생의 현실이다.) 필연적으로 같이 붙어다니게 되었다. 우리는 공통 관심사인 영화라는 주제로 많은 얘기를 했다. 나와 친구는 둘 다 조용조용한 성격이어서 그런지 마음이 잘 맞았다. 우리는 동아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동아리 이름까지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영화를 만들어보는 동아리를 만들면 좋을 것 같았다. 아마도 이 작은 대학교 안에는 분명히 나와 같이 미친듯이 반복해서 영화를 보고, 영화에 관련된 글을 몇 개 써본 학생들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사람들과 영화를 만들어보면 영화를 만드는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학교는 영화에 관련된 동아리가 없었다. 사실 동아리가 많이 없는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동아리는 많았지만, 우리 학교 학생들은 동아리에 대한 관심 자체가 적었다. 우리는 그 점이 걱정이 되었다. 막상 우리는 거창한 계획과 사상을 가지고 만들었으나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지 않는 것이 걱정이 되었다. 이것은 마치 거대한 배를 만들었는데, 승선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우리는 2012년 2학기에는 동아리를 만들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한탄하였으나, 2013년 1학기에는 기필코 우리의 계획을 실현시키라는 다짐을 하고서 학기를 마무리 했다. 2013년이 되면서 2012년의 우리처럼 복학생들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불과 몇 개월전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측은한 마음도 들기도 했었고, 신입생들이 물이라면 우리는 기름이었기에 우리가 먼저 다가가기로 했다. 만남은 필연적이었으나 친밀감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몇 개월전에 세운 포부를 밝혔다. ‘영화를 좋아하냐’라는 질문부터 ‘우리가 앞으로 하게될 일은 학교에 역사를 세우는 거창한 일이다’라는 포부까지. 차근차근 계획과 생각들을 전달했다. 그들은 군대에서 이미 사회 환경에 목말라 있었기에 그 두 명을 섭외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 이었다. 둘은 ‘너무 하고 싶었던 일이다’ , ‘1학년 때 동아리 제대로 못해서 너무 하고 싶었다’는 말을 하면서 우리와 함께 할 것을 약속했으며, 2명의 아군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나는 초대회장으로 취임 되었고,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관우,장비가 복숭아 나무 아래서 도원결의를 맺었듯이, 우리 넷도(한 명이 많아서 더 든든했다!) 솔로몬 광장 나무숲 아래서 의기투합 했다. 
막상 동아리를 창설 하려니깐 막막했다. 거대한 암벽을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솔로몬 광장에서 의기투합한 친구들 아닌가. 우리는 동아리 창설 뿐 아니라 영화라는 창의적인 작업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의지와 사기는 하늘을 찔렀지만 어디서부터 시작 해야할지 막막했고, 밑바닥부터 시작해야되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사실 밑바닥부터 시작해야되지 않겠냐는 의견은 옳은 의견 이었다. 학교가 개강을 한 뒤에 한 주 동안 동아리 연합회에서는 동아리 홍보전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솔로몬 광장에는 부스가 차려져 있었고 정식으로 인가받은 동아리는 부스에서 편하게 홍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는 처지였고, 고심 끝에 동아리 홍보지를 뽑아서 의기투합의 장소인 솔로몬 광장에서 직접 나눠주기로 하였다. 우리는 사람이 제일 많이 붐비는 시간. 점심시간을 노리기로 했다. 우리의 예상대로 점심시간 솔로몬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우리는 여러명이 뭉쳐다니는 학생들을 노렸다. 심지어 다른 동아리에 가려는 학생을 붙잡기도 했고, 일부러 그 앞에서 나누어 주기도 했다. 홍보지를 나눠줄 때 우리는 기대를 잔뜩했었으나 학생들의 반응은 예상 외로 시큰둥했다. 우려했던 결과였다. 나눠주기만 하면 많은 학생들이 너도 나도 동아리에 가입하고 싶다고 할 줄 알았으나 착오였다. 오히려 가는 길을 방해하는 것 같았고, 구석진 골목에서 신장개업한 가게 전단지를 홍보하는 것 마냥 초라해졌다. 우리는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함을 느꼈다. 그래서 고안해낸 두 번째 전략. 홍보지를 벽에 붙이는 것이었다! 우리는 첫 날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다음 날은 솔로몬 광장에서 배회하지 않고 학교 각 건물을 돌아다니면서 홍보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마다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홍보지를 벽에 붙였고(우리는 이것을 ‘물량 작전’이라고 지칭하였다.) 모든 건물에 다 붙인 뒤 후문에 친구가 묵고 있는 자취방에서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는 조금 전의가 상실해 있었다. 첫 날에 홍보지를 나누어 줄 때 사람을 끌어모은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고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전의를 다시 다지기 위해 말했다. ‘나는 우리만 있더라도 영화를 꼭 만들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모인다면 더 좋은 것이고, 이 학교에 우리만 있다고 하여도 나는 괜찮다. 우리끼리는 마음이 통했기 때문에 네 명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 친구들은 좋은 생각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 해보자고 하였고(친구 중 한 명은 내 연설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아쉬움을 털어내려는 순간 띵동하고 문자가 왔다. ‘동아리에 관심 있는데 어떻게 가입하나요?’ 나는 핸드폰을 쥔 채 일어났고, 순간 자취방은 축제의 장이 되었다. 마치 이 것은 결승전에서 지고 있었는데 후반 막바지에 기적같이 역전해버린 팀처럼 우리는 서로 얼싸 안고 좋아했다. 우리는 드디어 첫 발을 내 딛은 것이다! 역사적인 첫 걸음의 순간이었다. 나는 재빨리 핸드폰으로 답장을 했고 그 후로 첫 날에 세 명이나 지원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우리는 다음 날도 열심히 건물마다 홍보지를 붙일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그 한 주 동안 열심히 붙이고 다닌 끝에 무려 25명이라는 작은 과 절반의 숫자와 맞먹는 사람들을 모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는 일렀다. 우리는 아직 25명의 지원한 사람들을 다 만나보지 못했고, 지원한 사람들이 얼마 만큼 영화에 열정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했기에 한 명씩 만나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홍보기간이 끝나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분명 지난 한 주보다 활기 찼으며, 쉬는 쉬간과 수업이 다 끝난 오후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사람들을 일일이 다 만나봤다. 우리는 나름대로 면접을 위한 질문들을 준비했었는데 질문은 이러한 것들이었다. 

1.영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어떻게든 표현해보세요. (손으로 표현한 사람도 있었다!)
2.영화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습니까? 
3.자신이 본 최고의 영화는? 
4. 자신이 뽑은 최악의 영화는? 
5.자신이 본 영화 중 명장면을 꼽자면?

우리가 준비한 질문은 동아리 가입을 위한 어떤 형식적인 질문이라기 보다는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어차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우리 네 명은 형식적인 자리를 갖추는 것에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영화라는 공통된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니 공감대 형성도 쉬웠다.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명과 암이 갈리는 순간이기도 했지만(예상 외로 면접을 보고 난 뒤에 합격 여부를 바로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난감했다.) 서로 영화에 대해 공감하니 웃음 꽃이 저절로 피어났다. 우리는 한 명도 빠짐 없이 다 만나봤고, 단 한 명도 떨어뜨릴 수 없었기에 전원 합격시키는 걸로 합의했다. 그렇게 동아리 첫 모임이 시작되었고, 우리가 한데 똘똘 뭉쳐서 동아리 역사를 써내려가기로 했다. 나와 의기투합한 친구들은 동아리 임원으로 선출이 되었고, 우리는 모두가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동아리에 필요한 안건은 나와 임원들이 상의하여 냈고, 이 안건을 결정하는 것은 동아리 사람 모두의 투표로 결정하였다. 우리는 영화를 찍기 위해서 시나리오가 필요했고, 시나리오 콘테스트라는 것을 만들어서 제일 영화화 시키고 싶은 시나리오 한 편을 투표로 결정해서 뽑았다. 투표로 결정된 시나리오로 연기할 배우도 뽑았고, 모두가 연출에 참여하였으며, 이 영화는 동아리에서 찍은 첫 공식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매 학기마다 최소한 한 편씩 찍는 것이 동아리의 주된 활동으로 굳어 졌고, 2014년 1학기를 마친 지금 총 세 편의 동아리 영화가 제작 되었다. 
트뤼포 감독은 이런 말도 했었다. "나는 곧잘 이런 질문을 받는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이유로 단순한 영화광에서 비평가가 되고 감독이 되었는가라고..그건 정말 나 자신조차도 알 수 없다. 단지 확실한 것은 할 수 있는 한 영화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다는 것뿐이다.” 동아리에서 처음 찍은 영화를 촬영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과 모여서 감상했을 때, 조금은 쑥쓰럽기도 했다. 쑥스러웠던 이유는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영화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찍은 영화는 영화가 아닌 것일까. 왜 우리는 쑥쓰러웠던 것일까. 영화라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가 무엇인지는 지금은 알 수 없다. 영화를 작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풀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그것을 풀 수 있던 없던 간에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도 영화에 더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동아리의 이름은 ‘FINAL CUT’이다. 영화 편집 프로그램의 이름이기도 하고 ‘마지막 컷까지 최선을 다하여 찍자’라는 의미도 있다. 영화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고자하는 노력이 언젠가는 진정한 영화의 세계로 안내할 것임을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동아리의 캐치 프라이즈이자 모토인 장 뤽 고다르의 명언으로 긴 글을 마친다.

“우리가 영화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영화가 우리를 선택했다."